본인은 별을 보면서 이동통신을 연구하였다 ---
본인은 별을 보면서 이동통신을 연구하였다 ---
맑은날 밤하늘을 바라보면 수많은 보석같은 별이 반짝인다
특히 오늘같이 바람이 많이 부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 유난히도 반짝이고 깜빡인다
바람으로 인하여 급격한 온도 변화와 밀도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빛이 꺾이어 전등이 아주 빠르게 꺼졌다 켜졌다 하는것처럼 깜빡인다
수많은 별등중에서도 변광성이라든지 펄스파를 발생하는 별들이 있다
변광성은 별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여 주기적으로 빛의 세기가 다른 별들이다
이러한 주기성과 규칙성으로 인하여 외부의 은하의 거리를 재는 관측의 도구로 사용됀다
일종의 야드 스틱이라 하여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안드로메다같은 외부 은하여 거리를 재는데 가장 유용한 도구로 활용됀다
2개 이상의 별들이 서로 아주 가까이 회전하면서 단속적으로 발생하는 펄스파의 전파나 빛을 발생하는데 인류들은 이 데이타를 근거로 하여 가장 중요한 별의 정보들을 얻었다
그리하여 본인은 이러한 별들의 펄스파와 변광성의 주기성의 데이타로 부터 각종의 중요한 우주의 데이타를 획득을 하듯이 지구상에서 전파를 펄스파로 바꾸어 보내면서
통신을 하면 서로의 데이타 통신을 할수 있다는 힌트를 얻었다
전파의 짧은 시간의 펄스파에 음성이나 데이터를 압축하여 상대방에 보내면 적은 에너지로 보다 많은 데이터를 보낼수 있다는 사실을 우주의 별의 깜빡임으로 부터 알게 돼었다
별의 깜빡임으로터 천문학자들은 이것들을 관측하면서 수많은 우주의 데이터를 얻듯이 전파통신에서 펄스파의 중요성을 깨닫게 돼었다...
음성이나 데이터를 짧은시간 순간적으로 압축하여 펄스파를 발생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데이터 , 음성 통신을 할수 있고 적은 에너지로도 수많은 데이터를 전송할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었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는 불가능한 기술이었으나 반도체의 기술이 발전한 현대에는 디지털로 충분히 가능한 기술이었다
그리하여 본인은 자나깨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길거리를 걸으면서 생각을 한결과 새로운 파라다임의 통신기술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이 개념의 아이디어를 도면으로 그려서 각국의 정부의 통신 기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러시아나 과거 공산권이었던 지역으로 편지를 보냈을땐 극악무도한 안기부 , 국정원 , 미 CIA 일당의 정보망에 걸려 큰 봉변을 당하였다
야채 확성기 트럭으로 위장한 요원들의 하수인들이 무차별 쇠파이프를 휘둘러 쇠로 만든 낚시 의자로 방어하다가 낚시 의자가 풍지박산 났다
이렇게 풍지박산 초토화됀 낚시의자를 보고 본인은 한동안 넋을 잃다가 행동에 주의를 하기 시작하였다
남산의 중턱의 숲속길을 다리를 절면서 쩔뚝거리면서 병신세끼 행동을 하면서 안기부 건물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또한 한국의 통신기관에도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한국통신관으로부터는 반송처리하여 돼돌아왔다
그리고 일본의 통신기관 에게도 편지를 보냈으나 오직 일본만이 영어로 답장을 보내왔다
" 본국은 당신의 통신이론에 대하여 어떠한 하등의 조그마한 관심이 없으며 , 본국은 당신의 이론에 전혀 주의를 기우리지 않겠다는 는 내용이었다 -- "
본인은 일본에 대하여 상당한 실망을 하였다
본인은 자존심이 무척 상하였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일본과 한국에게는 이후로 생각한 과학적 창조 아이디어를 보내지 아니하였다
추석의 대명절 에는 전국민이 수천만명의 민족대이동을 하는 시기이다
서기 2000년만해도 아직은 그러한 풍습이 남아있는 시기라 추석이나 설 , 구정의 대명절에는 도시가 텅텅 빌 정도로 전부 시골로 고향으로 내려갔다
국정원 요원 일당들도 시골에 있는 부모님에게 문안 인사를 하러 전부 내려가고 고향에서 송편을 먹으면서 술을 쳐먹고 퍼 자고 있는 고요한 시기에
본인은 은밀히 텅텅 비어있는 서울 도시에서 버스를 타고가다가 은밀히 우체통에 접근하여 외국의 정부통신 기관에 설계도를 그린 도면을 편지봉투에 넣고 쥐도새도 모르게 우체통에 넣었다
그리고 10월 1일에는 국군의날에는 대한민국 전국의 국방군이 쉬면서 퍼자고 있고
서울에서는 역대 최대규모로 대규모 최첨단 무기로 군사 퍼레이드로 하면서 한창 들떠 있었다
그리하여 본인은 이틈을 노려서 서울 중앙 우체통에 은밀히 접근하여 도면을 그린 설계도를 외국 정보통신 기관에게 붙였다
그러나 2001년에서 2002년 후로는 명절풍습이 점차로 사라지고 극악무도한 국방군 , 국정원 , 미 CIA 일당들도 눈치를 채 알기 시작한 이후로는 편지를 더이상 외국에 붙이지 안했다
그리고 본인도 공작자금이 부족하여 우표를 살돈이 없었고 답장을 한장도 받지 못하여 포기하고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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