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악재의 쇄돌이 -----------


 1970년대  티브 드라마에 무악재의 쇄돌이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뭇꾼 쇄돌이가 지게에 나뭇가지를 지고  무악재를 넘어가면서 각종에피소드다 


 이때 어머니는  동네 소문으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옛날 조선 시대는  무악재는 도둑놈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고개를 넘으려면  도적떼에게  돈을 주고 일종의 통행세의 삥을 뜯겼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믿지 아니하였다 

 조선궁궐이 바로 앞인데 과연 산적같은 놈들이 우글우글했겠는가 의심을 했다 


 옛날에는 매우 험한 산길이었다고 ?????? ,  지금은 뻘뚤려 있는데 ( 애시당초 뻥뚤려 있던 길이 아니었다 ,  애시당초 험한 고개였다 ) ,  



  오늘날에  본인은 다시 생각하여 보았다 


  과연 국내 최대의 서대문형무소가  무악재에 조선시대 일제 시대에 들어섰는가 ???  


  조선말기 흑백사진들을 보면  독립문 배경의 안산과  인왕산 주의는  나무가 거의 없는 완전 암석의 산이었다 

  또한  그 흔한 초가집들도  안산과  인왕산 사이에는 거의 없어 보였다 


  본인은  서울에 이러한 한적하고 여유로운 조선말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그정도로  한산한  조선말 지역이  아닌것이었던 것이었다 


  무악재는  옛날  중국 사신이 오던  길이었다 

  한성 관문에  모화관에 영은문 주위에  미개한  거지같은 조선 백성들이  있으면 아니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정부에서는 소개 작전을 하여  거의 말끔이 정리했던 것이었을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또한  안산 과 인왕산 사이에는 나무도 거의 배어버려서  도적떼가 은신할수 없도록 하였을 것이다 


  반대편의 남산 방면 성곽밖과  서대문 근처는 초가집이 우글우글 몰려 있는 조선말 사진을 볼수 있다 


  마찬가지로 안산과 인왕산 사이에도 수많은 초가집이 우글우글  빽빽히 들어설 소지가 있어 보이지만  조선 정부가 의도적으로 소개시키고 ,  깨끗이 정리한것 같다 


  본인은 한때  조선말 안산밑의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매우 목가적이라고   생각하였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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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말기 영은문이 있었을때에는  완전 허허벌판  나무한그루도 볼수 없다 

 독립문이 세워지고 전기 통신선이 가설돼는 상황에서도 완전 초 토화 지역이었다 

  세번째 마지막 사진에서 겨우 조금지나사  초가집이 몇채 보인다 , 전기 통신선이 전봇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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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남산중턱까지 초가집이 숨쉴틈도 없이 빽빽이 들어선것을 볼수 있다 

 같은 시대의 안산 , 인왕산 사이의 사진과 매우 대조적이었다 

 이것을 미루어 짐작으로  의도적으로  청야작전을 시도했던것 같다 ,  청나라 사신의  조선정부의  국가 위신때문 , 그리고 도적떼 이유인것 같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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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나무 한그루도 없는 완전 깨끗한 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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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의 흔한 강가사진이다 

  본인이 어렸을때 구암리의 강가 모래밭을 거닐며 조그마한 물 웅덩이의 올챙이를 보며 향수에 젖는다 

  강가에는  부들수초가 자라나는 곳의 낚시의 찌를 던지는 사람의 한가한 모습 ,  어딜가나 무릎뿐이 잠기는 깊지아니한 강가의 넓은 지역이여 ........  


  예날에는 흔하던  아주 길쭉한 미류나무 향수에 젖는다 ....  



 개울가 도보 산보 행진 하는 양인(兩人)이로다 ,   오날날에도 있을뿐인가 ,  도보산뽀느는 오날 뿐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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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명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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